2009년 11월 19일
유한계급론
얼마전에 이도경이란 홍익대생이 남자 키 180안되면 루져라고 해서 지금 인터넷이 참 시끄럽다. 나도 그 기준에 대고 놓고 보면 루져이긴 한데 솔직히 별로 기분나쁘거나 하지는 않고 여기 발끈해서 울컥하는게 정말 루져라고 본다. 어쨌든, 재미있는 일이 또 벌어졌다. 이 루져녀의 신상이 좀 공개된 모양인데 인터넷 어디 게시판 들어가서 보니 이 루져녀가 명품가방, 그것도 엄청나게 비싼거 수리하는데 얼마인가? 이런거 물어본 게시물과 "집안 사정이 안좋은데 서울 사립대 가게 되어서 형편이 안좋다. 장학금좀 주십사"하는 글들을 올렸던 게시물을 본 일도 있었다.
이런거 보면서 된장된장 하는데 된장녀라는 정확한 기준은 잘 모르겠지만 이전에 경제사전에서 봤던 용어가 하나 생각났다. `유한계급'이라는 용어였는데 베블런이란 경제학자가 자기가 저술한 『유한계급론』이란 책에서 처음 쓴 용어란다. 난 처음 그냥 한글만 읽고 계급에 한계가 있다는 그런 이론인가보다 했었는데 그게 아니라 有閑階級論, 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라고 되어있다. 한자를 봐도 알겠고 영어낱말 Leisure를 봐도 알 수 있을거다. 어쨌든, 이 유한계급이 뭔고니 하면 생산활동에 전념하지 않고 비생산적인 활동인 예술이나 오락 등 비생산적인 일에 탐닉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주로 대자본가나 귀족과 같은 화폐유통의 정점에 서 있는 사람들을 그 범주에 넣는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게 아니라 이 계급들이 행하는 것들이 아랫계급에게 부러움의 대상이되고 그걸 모방하는 아랫계급들이 생겨난다. 그러면 그 상류계급은 그것을 뽐내는 것이다. 즉 과시적 소비로써 상류계급의 그것을 따라하면서 열등의식을 달래는 그런 식이다. 베블런은 한 사회에 유한계급의 숫자가 많다는건 사회정의의 면이나 생산적 면에서 부정적 효과를 가져온다고 봤다.
이게 대충의 설명이다. 나도 저 유한계급론이란 저서를 읽어봤으면 더 자세히 알겠지만 저 책이 어떻게 생긴지 구경도 안/못해봤기 때문에 더 자세한건 모르고 저정도로 수박 겉핥기도 아닌정도로는 알고 있다. 아마도 우리가 부르는 된장이란 칭호를 달고 다니는 사람들은 분명 저 유한계급안에 들어갈 수 있을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생산적인 일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겉모습에만 치중하는 그런거 말이다. 상류계급을 따라한다고 했는데 너나 나나 모두 다 똑같이 연예인 누가 했었다네 했다고 다 따라하면 말 그대로 개나소나 다 하고 다니는게 되어버린다. 그런데 그걸 따라서 하지 않으면 뭐 유행에 뒤쳐지니 시대감각을 모르니 하는 이상한 오해를 뒤집어 쓰고 다니기도 참 십상이다.
문제는 그러고 다니는 인물들이 진짜 유한계급이냐는 것이다. 사실 자기가 벌어들이는돈 개같이 쓰든지 정승같이 쓰든지는 자기 마음이긴 한데 그렇게 뽐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문제일 것이다. 혹자는 그렇게 소비를 해야지 경제가 잘 돌아갈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실용적인 부분에서의 소비와 유통이 아닌 반드시 필요로하지 않은 부분에서의 과소비는 거품이라고 본다. 흉년이고 기갈이 났을때 콩 한자루가 비쌀까? 99.99%금괴가 비쌀까? 가격면에선 금괴가 단연 비싸겠지만 당장에 필요한건 콩이나 쌀같은 식량한자루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통화만능주의 시대인 지금에 와서 옳기만한 비유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현대는 개성의 시대여서 각자 개성을 뽐낸다고는 하지만 매스미디어에서 보여지는 개성이라 일컬어지는 것들은 대부분 무언가 따르는 주류같은게 있어보인다. 그러니까 영화배우 누가 어떤식으로 걸쳐서 유행,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따라하는 유행이 된다. 그러면 개성이 있는 것인가? 마찬가지로 유한계급론에 나오는 저 유한계급처럼 상류계급이 하는걸 따라하면서 대리만족 느끼는것은 과연 진정한 만족감인가? 내가 지금 생각하는 한도에서는 그저 자위하는 수준밖에 되지 않는것 같다.
아마도 사람들은 사회성이 잘 발달한 동물이라서 그런지 어느 집단이나 단체에 소속되어 안정감을 느끼는듯 하다. 그러니까 이런거 따라하는 사람, 저런거 따라하는 사람, 이도저도 아니고 새로운걸 만들어서 따라하는 사람과 같은 일종의 집단이나 단체가 생기는게 아닌가? 그렇게 집단이나 단체에서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끼는게 나쁜건 아니지만 그 단체와 소속외에 것을 공격하고 배척하려는 태도는 어째서인지 만물의 영장답지 않다. 그저 그냥 저 먼옛날 원시시대 군비확장 본능의 또다른 모습으로 밖에 보이질 않는다.
유한계급이 되고 싶어서 따라하는 거짓 만족감 대신 차라리 솔직해 지자. 배고프면 배고프다고 말하자. 지겹다면 지겹다고 이야기해도 될 것이다. 싫다면 싫다고 하자. 키가 작아서 싫다고 핀잔을 들었는가? 그럼 난 그 싹수 없어보이는 면상과 머릿속에 장착한 기본이념이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말해보자. 그러면 유한계급이 있어도 거품낀 유한계급보다는 거품없는 담백한 유한계급들이 보일 수 있을거라고 난 생각해본다.
# by | 2009/11/19 13:12 | 내생각 모음집 | 트랙백 | 덧글(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