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믿는다는 것에 대한 자세

 우리는 항상 어느 신념에 둘러쌓여 살아가고 있다. 정치, 종교,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신뢰나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정치에선 이념을 주 가치기준으로 삼고 신념이나 믿음을 쌓아가고 종교에선 신앙대상, 사회에선 경제체제, 문화에서는 삶 등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런데 이 신념과 신념이란게 충돌이 생겨 별의 별 희한한 현상을 만들어내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냉전이었다. 냉전, 과거 구 소련과 미국간의 군비경쟁부터 해서 경제체제 경쟁까지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냉전 뿐이 그랬었나? 유사이래로, 아니 선사시대 이래로 아마 생각이 달라서 부족간에 전쟁을 벌이고 그러는 일이 부지기수였을 것이다. 그 싸움이 점점 발전하고 규모가 커지는 양상을 띄면서 지금 세상의 대립을 불러온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극심하고 후유증 큰 대립은 종교간의 대립이라고 본다. 사실 저 위에 열거한 경제니 정치니 종교니 하는건 모두 생각의 다름에서 나온다. 그 중에서 가장 심각한 대립을 하고 있는건 아마 종교일 것이다.

 

 가령 동성연애자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하여 나 개인적으로는 "나한테만 달려들지 않는다면 복숭아맛을 좋아하느냐 딸기맛을 좋아하느냐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왜냐면 난 최소한 동성애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어떤 사람들(주로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사람들)에게 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종종 "성경적으로 보면 안좋지 않느냐"이다. 거 참~ 기가막혀서! 이 세상 어느 종교에서 동성애를 합리적이라고 보는게 어디에 있나? 어떤 개사이비라 할지라도 모두 나름의 음/양 조화로 이루어져 있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항상 어떤것을 너무나 열심히 믿고 있는 나머지 자기의 것만 옳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할 때가 있다. 종교에서만 그런가? 아는만큼만 보인다고 100이란 숫자가 제일로 큰 숫자인줄로 알던 어린 시절엔 100까지 세고나면 더 셀 숫자가 없는줄 알았고 한번에 누가 더 많은 사탕을 먹을 수 있느냐는 어린시절 사소한 논쟁에서 먼저 "백개"하는 놈이 이기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훌쩍 커버린 지금에 와서 사탕 한번에 백개 먹을 수 있다고 하면 순순히 믿어줄 사람도 별로 없을것 같거니와 그 사실에 대해 별로 신경쓸 사람도 없을것 같다.(나같은 경우 패죽여도 한번에 10개 이상 못먹을 것 같다. 어찌어찌 죽인다고 하면 10개는 먹겠지만!)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과학계의 풀리지 않고 끊임없는 논쟁이 되는 이슈는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의 논쟁일 것이다. 성경을 열심히 읽고 성경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창조론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는다. 그런데 그 믿음이 너무 지나친 탓일까?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생각을 남에게 덧씌우려고 노력을 한다. 그래서 큰 싸움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그게 바로 유대인과 중동사람들의 끊임없는 이스라엘 전쟁이다. 거기 종교적 믿음에 정치적 이념까지 결합을 해버리니 전쟁의 스케일은 정말 헤아릴 수 없이 커지기만 하는 중이고.

 

 아까 아는만큼만 보인다고 했는데, 이 `아는만큼'을 무시하고 자기가 아는게 절대적인양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로 어떤 사람들이냐면 독서를 조금 하긴 했는데 수준있거나 깊지 않고 대충 해놓고서 스스로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 부류들이다. 이 사람들은 항상 어떤 사실이나 현상을 보면 00현상, 00주의 이런걸로 꼭 변형시켜 그 틀에 끼워 맞추려고만 한다. 이 끼워맞추기란 쉽게 말해 자기의 교리로 다른 종교를 해석하니 이상한 결론이 도출될 수 밖에 없고 이상한 결론이 나오니까 `잘못된 길'이란 결론을 아주 쉽게 내려버린다.

 

 조선건국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정도전(鄭道傳)이 불씨잡변(佛氏雜辨)이란 책을 써 불교를 신나게 까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 책을 말 그대로 해석해보면 "부처의 개소리"정도로 할 수 있다. 그런데 유학자이던 정도전에게 불교가 나쁜 종교였음은 이루말할 수 없다. 그것은 유교와 불교의 교리차이에서 발생하는 견해차이인데 우선 유교에서는 부모와 조상을 모시는것을 중요시하게 여긴다. 그에 반해 불교에서는 속세의 모든 번뇌를 끊기 위해 열반에 들 것을 적극 권장한다. 그러니 유가 입장에서 보면 불교는 천하의 불상놈들이 만들어낸 집단으로 보였을거고 고려 멸망의 원인이 적극 권장하던 불교의 타락이 원인이어서 그랬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정도전이 이 불씨잡변을 순수하게 `타 종교에 대한 교리 반박'쯤으로 순수하게 사용할 목적으로 집필했으면 모를까 대대적으로 집행했단 기록을 어디서 본것 같고 국사책에도 나오는걸로 봐선 정도전이 순수하게 그냥 이 불씨잡변을 교리반박서로 썼을것 같진 않다. 아마 자기가 배우던 학문을 새로 건국한 나라에 보급하려던 생각도 있었을 것이고 불교의 폐단을 알리는데도 썼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정도전이 불교가 왜 생겨난 종교인지 어느 상황에서 전파된 종교인지 알고 그 책을 만들진 않았을거라는게 내 생각이다. 후일 조선 중엽으로 가면서 민중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퍼져나가던 미륵신앙이나 비결서같은게 조선정부의 탄압대상이었던걸 보면 정도전이 불교비판을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정치적 과도기에 정치적으로 이용했다고 생각된다.

 

 신라시대에 당나라로 일찍 유학을 가 7년만에 당나라 과거시험에 합격했고 당나라에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토황소격문을 지어 황소에게 보냈고, 말위에 올라 토황소격문을 읽던 황소가 오싹하여 말에서 떨어질뻔 했다는 일화를 남겨 유명한 최치원이란 사람이 있다. 당시에 머리가 아주 좋았던 수재인 모양으로 유교, 불교, 도교 등 여러가지 종교나 사상에 아주 정통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 최치원이란 사상가가 불교나 유교나 도교를 잡아 비난하거나 잘못되었단 이야기를 하고 다녔단 이야기는 당최 찾아볼 수 없다. 아마 그만큼 경지가 높이 올랐고 아는것이 있었기 때문에 알고 있는 모든것을 모두 보완해 살아갔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다시 한번 생각하는거지만 우리는 아는만큼만 알고 살아간다. 오죽하면 `무식한걸 모르고 있으면 그게 죄다'라는 말까지 생겨났을까? 우리가 뭔가를 믿고 있다고 해서, 그게 절대적인 가치라고 해서 함부로 다른 가치나 생각을 평가하고 속단하는 우는 범하지 말자. 이 생각은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던 모양으로 베이컨이라는 철학자는 동굴의 우상(the idol of cave)이란 말을 하여 자기가 만들어낸 주관적인 환상에 빠져사는 것을 경계하기도 했었다. 스스로 어두운 동굴속으로 깊이깊이 들어가지 말고 많이 알고 많이 비교해보고 많이 생각해보자.

by 나무귀신 | 2009/10/19 11:58 | 내생각 모음집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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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히읗 at 2009/10/19 14:15
동굴의 우상은 베이컨이 한 어떤 분류 아닌가 합니다만.
Commented by 나무귀신 at 2009/10/20 14:30
으악... 찾아보니까 베이컨이 한거 맞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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